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피로스 전쟁 (문단 편집) === 양군의 움직임 === 에페이로스를 떠나기 전, 피로스는 우선 '''마케도니아의 [[프톨레마이오스 케라우노스]]'''[* [[프톨레마이오스 1세]]의 아들로 [[셀레우코스 1세]]를 죽이고 마케도니아로 망명했다가 마케도니아군의 지명으로 왕이 되었다.]와 동맹을 맺고 9천의 병력과 50마리 [[코끼리]] 부대를 받겠다는 약속을 얻는 데 성공하였다. 또한 테살리아의 기병, 로도스 투석병을 모집해 기원전 280년 봄, 2만 5천에 달하는 병사들과 함께 이탈리아에 상륙했다. 피로스가 이탈리아에 상륙했다는 소식을 들은 로마인들은 8개 군단과 같은 수의 보조병(Auxilia)을 편성한 8만 명의 병력을 4개 부대로 나뉘어 각지에 배치했다. 2개 군단은 전직 집정관 바르불라의 지휘하에 베누시아에 주둔하며 삼니움족과 루카니아족을 견제하여 피로스의 군대에 합류하는 것을 막기로 하고 2개 군단은 로마에 남아 방어를 맡았다. 그리고 남은 4개 군단은 그해의 집정관인 [[티베리우스 코룬카니우스]]와 [[푸블리우스 발레리우스 라이비누스]]가 각각 2개 군단을 지휘하여 티베리우스 코룬카니우스는 에트루리아를 압박하여 피로스와 동맹을 맺는 것을 저지하고 라이비누스는 타라스로 가면서 루카니아인들의 영토를 약탈하고 헤라클레아를 향해 진군했다. 그는 이곳을 점령해 피로스와 그리스의 식민지인 칼라브리아의 연결을 끊어 칼라브리아가 로마에 반기를 드는 것을 막고자 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